사회초년생의 첫 집 마련과 은퇴자의 임대수익 목적 투자에 활용되던 빌라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기존 전셋값보다 시세가 내려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 이후 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강화된 데다 내년부터는 임대사업자도 같은 기준으로 보증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증보험 가입 기준(공시가의 150→126%)이 낮아지면 시세와 전셋값 간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수하는 이른바 ‘갭투자’가 줄어들고, 장기적으로 빌라의 월세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매매도 움츠러들고 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6월 전국에서 매매된 전체 주택 27만4608건 중 다세대 매매 비중은 12.1%(3만3131건)로, 지난해(21%)보다 9%포인트가량 줄었다. 1~9월 서울 기준 매매량도 1만584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5835건)에 비해 38.7% 줄었다.
빌라 시장 위축은 올해 초 불거진 역전세난의 영향이 크다.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전세금은 물론 매매가도 낮춰 파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앞으로 전셋값 하락세는 더 가팔라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역전세난 대책으로 꺼내든 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순차적으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전세금 등을 지키기 위해 가입하는 보증보험은 크게 임차인(세입자)이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험’과 임대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임대보증보험’으로 나뉜다. 기존 공시가의 150%까지 가능했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기준은 지난 5월부터 126%로 낮아졌다. 국토부는 지난달 같은 기준을 임대사업자가 가진 주택에도 내년 7월부터 의무 적용한다고 밝혔다. 기존에 등록된 민간임대주택만 2년 유예기간을 준다.
예컨대 공시가가 2억2500만원인 빌라라면 기존에는 3억3750만원까지 보장이 됐지만, 바뀐 기준으로는 2억8350만원으로 보장 한도가 떨어진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 J공인 관계자는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우려로 빌라 전세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전셋값 수준이 보증보험 가입 기준에 맞춰지고 있다”며 “실질적으론 전셋값을 정부가 강제로 낮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료 인상률이 5%로 제한되는 임대사업자의 ‘빌라 엑소더스’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기적으론 빌라 시장도 오피스텔같이 월세 시장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비아파트의 정보 비대칭성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월세화가 속도를 낼 수 있다”며 “다만 빌라 임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고 전세 보증도 까다로워져 시장이 안정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6월 기준 전국 임대차 계약 가운데 월세 비중은 서울이 8.5%, 전국이 12.6%다. 4년 반 전인 2019년 1월 4.8%와 5.8%에 비해 두 배가량으로 높아졌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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